내 이름은 빨강

示衆/明室 2009. 9. 21. 01:30


상해기차역 부근에는 재개발을 위해 철거가 진행중인 곳이 여럿 있다.

여행객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배제시킬 수 있을까? 카메라를 들이대어도 될까? 사는 곳을 침범받았다고 느끼시지나 않을까? 평소부터 자주 가 보고 싶으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먼저 말을 걸어오는 그곳 주민들의 스스럼없음에 환대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어느 정도 예외적인 환대였을 듯한데,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또 하나. 카메라는 이런 곳을 너무 아름다운 이미지로 바꿔 버린다. 모든 사진이 사회고발 리얼 다큐여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일단은 예쁜 빛을 찾아 적절한 구도로 현실을 잘라내려는 욕망을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너무 쉽다. 어디나 똑같은 도시와 그 속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의미있는 것으로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 익숙함에서 순간 떠오르는 불균형이나 균열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고, 머뭇하는 사이에 지나쳐 버리곤 한다.

낡은, 오래된, 곧 사라질 곳은 공간 자체가 가진 시간의 힘이 꽤나 무겁다. 그 공간을 아주 조금만 보기 좋게 떼어내어도 그 이미지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고, 그 시간 속에 발을 담근다는 것만으로 자기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착각.

막말로 폐허 더미에서 예쁜 색깔만 찾을 수도 있다. 수십년 동안 칠하고 벗겨지고 다시 칠하고 또 벗겨지기를 반복해온 대문의 색깔은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된 듯 흉내낼 수 없다.
 
혹은 어떤 형체들만 잘라낼 수도 있다.


아이가 앉아 있는 벽돌 잔해들은 어느 시냇가 자갈돌처럼 반짝인다. 한참을 어슬렁거리며 꼬마의 주위를 서성였다. 우리끼리 놀기도 하고 그곳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 사이 아이에게서 경계하는 눈빛이 사라져갔다. 어쨌든 이곳은 그녀의 놀이터였다. 또래인 딸의 얼굴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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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