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건물에 향수를 느끼는 세대라는 말을 집사람에게서 들었다.
알고 지내는 다큐 감독 언니의 새로운 시나리오에서 읽은 것이라고 한다.
엇?
"시멘트"와 "향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인데 의외로.. 여운이 남는 조합이다.
시멘트 하면 우선 생각나는 건 "부르꾸"(우리 동네에선 블럭을 다 이렇게 불렀다!)로 쌓아올린 담장이다.
세멘(시멘트)은 적게 들어가고 모래만 잔뜩 넣어,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만지면 바스라지는 그런.
바깥을 시멘트로 매끄럽게 미장하지도 않아 까맣게 변색되고 군데군데 이끼도 끼어 있는 그런 낡은 부르꾸 담장이 우리 동네에는 즐비했다. 원래 돌과 흙을 이겨 만든 담장들은, 볏짚을 얹은 초가집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문득 그 정겨운 초가집과 흙담장이 전혀 향수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린시절 높디높던 담장이 어깨맡에 오게 된 그 시간의 흔적이 부르꾸 담장에 남겨져 있나 보다.
누나가 새로 쓴 시나리오는 영화 편집용으로 무려 12년간 사용한 매킨토시 요세미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나는 그 기종을 구경한 적이 없어 정확히 어떤 모양을 한 놈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워드용으로 사용할 컴퓨터도 10년을 넘겨 사용하기는 힘들다는 것, 아마추어로 시험삼아 15분짜리 단편을 편집하는 것도 아니고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사람이 12년 전 최신기종을 21세기까지 사용했다는 게 좀 뜨악했다. (사실 그 누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뜨악할 일도 아니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든.) 부팅 버튼을 눌러놓고 한참 책읽다가 편집 가동시켜서 처리가 되기까지 한두 시간 혹은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한다고. 그러다가 중간에 퍼지면 그때까지 편집한 것이 모조리 헛수고가 되어 마음 졸이면서 말이다. 첨단 테크놀로지의 수공업적 제작?
새끈하고 처리속도 빠른 최신기종이 없다면 영화도 못 만들 것 같고, (내 기술 때문이 아니라) 카메라 때문에 사진도 구린 것 같고, (내 귀가 문제가 아니라) 스피커를 탓하고 싶지만, 어쨌든 10년 이상씩 지니고 다니는 것들에는 그 물건만이 가진 기억이 있고 어떤 정서적 교감 같은 게 있나 보다. 십년째 들고 다니는 핸드폰, 십년 된 노트북, 십년 된 전자사전, 십년 된 mp3 플레이어 따위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이건 무려 시멘트 건물에 향수를 느끼는 것보다 더욱 머나먼 거리에 있는 어떤 것이다.
요세미티로 마지막 편집한 <앞산展>이란 영화가 인디포럼 관객상을 받고, 요세미티 시나리오도 지원을 받게 되는 등 최근 들어 좋은 일이 많은 것 같다. 축하할 일이다. 지원받은 금액의 절반은 새 카메라(8미리 DV에서 디지털로)에, 나머지 절반은 새 편집용 매킨토시에 사용될 것 같다. 촬영과 편집에 최소한 필요한 장비를 갖추는 데 지원금 전체가 들어가 버리면 영화는 어떻게 찍나?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이며, 에세이로 너무나 훌륭한 그 시나리오의 발상이 과연 영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걸일까? 새로 산다는 장비들이라고 해 봐야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들도 들고 다니는 그런 것들일 텐데. 이 장비들은 앞으로 또 몇년을 그녀와 같이 할까? 멀리서 바라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그러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녀이다.
알고 지내는 다큐 감독 언니의 새로운 시나리오에서 읽은 것이라고 한다.
엇?
"시멘트"와 "향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인데 의외로.. 여운이 남는 조합이다.
시멘트 하면 우선 생각나는 건 "부르꾸"(우리 동네에선 블럭을 다 이렇게 불렀다!)로 쌓아올린 담장이다.
세멘(시멘트)은 적게 들어가고 모래만 잔뜩 넣어,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만지면 바스라지는 그런.
바깥을 시멘트로 매끄럽게 미장하지도 않아 까맣게 변색되고 군데군데 이끼도 끼어 있는 그런 낡은 부르꾸 담장이 우리 동네에는 즐비했다. 원래 돌과 흙을 이겨 만든 담장들은, 볏짚을 얹은 초가집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문득 그 정겨운 초가집과 흙담장이 전혀 향수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린시절 높디높던 담장이 어깨맡에 오게 된 그 시간의 흔적이 부르꾸 담장에 남겨져 있나 보다.
누나가 새로 쓴 시나리오는 영화 편집용으로 무려 12년간 사용한 매킨토시 요세미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나는 그 기종을 구경한 적이 없어 정확히 어떤 모양을 한 놈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워드용으로 사용할 컴퓨터도 10년을 넘겨 사용하기는 힘들다는 것, 아마추어로 시험삼아 15분짜리 단편을 편집하는 것도 아니고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사람이 12년 전 최신기종을 21세기까지 사용했다는 게 좀 뜨악했다. (사실 그 누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뜨악할 일도 아니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든.) 부팅 버튼을 눌러놓고 한참 책읽다가 편집 가동시켜서 처리가 되기까지 한두 시간 혹은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한다고. 그러다가 중간에 퍼지면 그때까지 편집한 것이 모조리 헛수고가 되어 마음 졸이면서 말이다. 첨단 테크놀로지의 수공업적 제작?
새끈하고 처리속도 빠른 최신기종이 없다면 영화도 못 만들 것 같고, (내 기술 때문이 아니라) 카메라 때문에 사진도 구린 것 같고, (내 귀가 문제가 아니라) 스피커를 탓하고 싶지만, 어쨌든 10년 이상씩 지니고 다니는 것들에는 그 물건만이 가진 기억이 있고 어떤 정서적 교감 같은 게 있나 보다. 십년째 들고 다니는 핸드폰, 십년 된 노트북, 십년 된 전자사전, 십년 된 mp3 플레이어 따위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이건 무려 시멘트 건물에 향수를 느끼는 것보다 더욱 머나먼 거리에 있는 어떤 것이다.
요세미티로 마지막 편집한 <앞산展>이란 영화가 인디포럼 관객상을 받고, 요세미티 시나리오도 지원을 받게 되는 등 최근 들어 좋은 일이 많은 것 같다. 축하할 일이다. 지원받은 금액의 절반은 새 카메라(8미리 DV에서 디지털로)에, 나머지 절반은 새 편집용 매킨토시에 사용될 것 같다. 촬영과 편집에 최소한 필요한 장비를 갖추는 데 지원금 전체가 들어가 버리면 영화는 어떻게 찍나?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이며, 에세이로 너무나 훌륭한 그 시나리오의 발상이 과연 영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걸일까? 새로 산다는 장비들이라고 해 봐야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들도 들고 다니는 그런 것들일 텐데. 이 장비들은 앞으로 또 몇년을 그녀와 같이 할까? 멀리서 바라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그러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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