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어제는 중국현대문학 관련 학회가 있어 상해대를 갔다.

올해는 굵직한 몇십 주년이 여러 개 있는데, 건국60주년(아마 10월에 큰 행사가 있지 않을까?), 오사운동 90주년, 천안문사건 20주년 등이 그것이다. 건국60주년은 중국당대문학 60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사운동 에서 인민공화국 건국까지를 현대문학으로 끊는 바람에 이미 60년이나 쌓여온 시간을 당대로 구분하고 있어 논란이 많이 되는 분기이다. 뭐, 그 당대문학을 돌아보는 학회 되겠다.

왕효명(왕샤오밍) 교수의 상해대와 장욱동(장쉬둥)의 뉴욕대가 연합한 것인데 이와 비슷한 연합은 왕덕위(데이비드 더웨이 왕)의 하버드와 진사화(천쓰허)의 복단대가 작년 말 꾸린 학회이다.

학회에서 발표되는 글이야 어차피 굉장히 지루했고, 평소 글로 보던 사람들 얼굴이나 확인하는 자리라고 보면 되겠다.

저녁에는 상해대에 있는 후배들과 함께 왕효명 교수 등의 중국인 학생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라기보다는 바로 술로 들어갔다. 상해에서의 술자리는, 지금까지 내 느낌은,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라기보다 술을 홀짝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우리 지도학생들의 모임에서 술을 양껏 먹어본 적은 없었다. 매번 한 사람이 미친 척하고 분위기를 띄워 보지만, 매번 그 사람만 미치고 끝나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주 교양있는 몸짓으로 이야기만 나누다가 못 이기는 척 슬쩍 분위기만 맞추는 식. 돌아가며 노래를 부른다거나 등등. 주로 각종 방언으로 노래를 한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 그래서 나도 한국어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상해대에서 현대문학하는 친구들은 상해 출신이 거의 없고 사천, 안휘, 곤명 등 지역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지금껏 상해에서 먹어본 술자리 중 가장 거하게 폭음한 날이 되어 버렸다. 시작은 서로 탐색하듯 조용하더니(나 혼자 복단대/한국인이었다. 즉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은 나 하나였다.), 자기소개하고 한잔씩 깐베이가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속도가 빨라졌다. 빈속에 맥주로 배를 채우고 나니 밥도 별로 못 먹었고, 먹을 시간도 별로 없이 계속 술잔을 비워야 했다.

급기야 그 중 한 친구와 의형제를 맺기까지... ㅡㅡ;;
7번 깐베이를 하고 나서, 한 번만 더 마시면 팔배가 되는데, 팔배(八杯; 여덟 잔)나 팔배(八拜; 여덟번 절하기)나 그게 그거니 한잔만 더 먹고 의형제를 맺자고 하더라. 내가 형이 되는 거니까 손해볼 건 없다 싶어 그러자고 했다. 그 친구 이름은 장석과(張碩果; 장숴궈)이다. 나머지 이름들은.. .. 기억이 안 난다. 동생만 챙기면 되지 머. :-)

상해대 서문쪽에 제법 큰 상가가 조성되어 있던데, 한국식당들도 여럿 있고 2층에는 주로 다양한 식당들이, 1층에는 주로 가재처럼 생긴 샤오롱샤(小龙虾)를 파는 식당들이었다. 광장에 노천카페처럼 식탁과 의자를 놓고 야외에서 이 가재에 술을 곁들여 먹는데. 광장 전체가 안개에 잠긴 듯 연기가 자욱했다.


술 마시느라 사진은 한장도 찍지 않았다. 지저분하지만 정감있는 그 광장을 찍어놨어야 하는데.. 플리커에서는 대충 이런 이미지가 검색된다.(어? 플리커 되네?? 이건 또 언제 풀린 거야?) 기름으로 조리한 거라서 저렇게 비닐 장갑을 끼고 먹는데, 머리를 떼고 나면 먹을 수 있는 살은 손가락 한마디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비닐도 계속 찢어져서 정말이지 손 버리고 입도 버리기 쉽상이다. 싼맛에 배도 부르지 않고 손도 계속 움직여야 해서 술안주로는 딱이겠다.

암튼. 아주 늦게까지 마시지는 않았지만 너무 급하게 마셔서 그런지 오늘은 하루 종일 죽을 맛이었다.
마시다 보니, 한국인 교수님도 가시고 상해대 한국후배들도 가 버리고.. 우리 의형제는 자기 기숙사에서 자고 가라는데. 술 취해서 험한 꼴 보이기는 싫어 그냥 집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택시를 탔다.

나름대로 아주 재미난 경험을 한 셈인데. 하여튼 분위기에 휩쓸려 과음하면 안 될 노릇이다...
술을 깨려고 지난번 후배가 놓고 간 "여명"을 마셨는데. 참 나. 난 왜 여명만 마시면 오바이트를 하는 거야? 아직 두 캔이 남았는데 저걸 어떻게 한다?

저녁엔 불낙전골을 시켜 먹었는데, 국물이 굉장히 맑고 들깻잎이 들어 있어 시원했다.
불낙전골을 먹고 겨우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집 전골을 자주 시켜먹게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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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