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쓰고 보니 초파일!'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5.22 스님과 만난다면.. 2
카테고리 없음 2010. 5. 22. 01:48

저녁을 먹다가 문득 앞으로의 인연 중에 스님과의 만남이 없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맥락도 없이 그냥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친하게 지내는 스님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설법을 들으려는 게 아니라 친구처럼 고민도 털어놓고, 그쪽 고민도 들어주는(스님이라고 왜 고민이 없겠는가!!) 뭐 이런 관계..

그런데, 스님과 동등한 자격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스님들은 왜 속인들에게 하대하고 속인들이 자신을 상좌에 올려주길 바라는 걸까? 얼마 전 불교 공부하는 형이 이제 막 비구니가 된 후배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예전처럼 서스럼없이 대했더니 흠칫 놀라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비구니의 입장에선 아마도 출가 후 속인에게 그런 대접은 처음으로 받아봤을 터. 새로운 관계(즉 받들어 모셔지는/공손하게 대접받는 관계)가 형성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가 뒷통수를 얻어맞은 건데, 잠시 후에는 오히려 그걸 더 편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 형이야 출가만 안 했다 뿐이지 불교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스님/불자들에게 강의도 하고 하니 내부인(혹은 좀 더 솔직히 말해 윗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기도 하다.

와이프와의 인연 등으로 나도 만난다면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인데,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땟을까? 그 스님이 나에게 비슷한 걸 강요한다면?
나는 불교에 호감이 있고 친숙하게 생각하지만 신도도 아니고 불경을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 나는 예수보다는 붓다에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스님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지도 않고 내게 필요한 더 많은 지혜, 혹은 가르침을 주지도 않는 스님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까? 그냥 평등하게 이야기하면 안 돼?

밥 먹으면서 할 일도 없고 해서 곰곰 생각해 보다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스님은 우리보다 높은 신분이 아니라 신분 바깥이다. 바깥이기 때문에 하층민도 존대하고 귀족들도 존대하는 것이지만, 시대에 따라서는 바깥이기 때문에 최하층민이 되기도 한다. 우리같은 속인이야 자신이 어느 계급인지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해도 나보다 위에 누가 있고 아래에도 누가 있다는 정도는 어렴풋이 느낀다. 그래서 관계맺기에 앞서 교통정리를 하곤 한다. 나이 묻고, 경제수준 가늠해 보고, 교양수준도 좀 떠 보는 등등.. 속세와 인연을 끊고 신분 바깥으로 나갔다면, 그런 관계망을 벗어나서 직접 ''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니가 내 후배였던 선배였던, 할아비였던 아무 상관이 없잖아.

아직은 스님과 만날 일도 없고, 만나서 딱히 할 이야기도 없으니, 미리 고민할 필요는 없겠다.



스님 하면 강원도 어느 산골 절에서 마주친 노스님의 눈빛과 호통이 떠오른다. 떠올리기 싫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동아리 선배가 총무로 있는 절에 한 열흘 머물 때가 있었다. 대학원 입학 직전이었다. 그 전부터 잘 알거나 친했던 선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선배라고 불렀지 스님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낮에는 경운기로 나무를 운반해 주(다가 사고를 내)기도 하고, 저녁에는 같이 운동도 하고, 밤에는 몰래 수정과를 꺼내 먹었다. 깊은 산골에 오래동안 묵혀 둔 깊은 맛의 그 수정과를 잊을 수 없다. 스님과 친해지고 싶은 아주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수정과 먹으려면 보살님과 친해져야 하나?) ^^
어느 저녁에 운동을 좀 심하게 한 날이 있다. 정해진 투로를 같이 연습하고, 권법 몇 개로 몸을 푼 뒤 봉을 휘둘렀다. 대학원 준비 때문에 약간 늘어난 담배를 끊어보겠다고 절에 들어올 때 담배를 가져가지 않았다. 슈퍼도 없고, 사흘째는 미칠 것 같아서 낮에 사역하던 군바리가 피는 담배 좀 뺏어보려는 마음까지 먹었다. 아무리 눈이 뒤집혀도 차마 그짓은 못하겠어서 겨우 참았는데, 어쨌던 몸이 한결 가벼웠다. 겨울이었고, 밤이었고, 강원도 산골짝이었다. 민간인 출입통제 구역이기도 했다.


운동을 끝내고 나니 9시를 넘겨 다른 스님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선배 스님은 샤워시설이 있는 욕실 바로 옆방에 노스님이 주무시고 계시고 늦어서 온수가 별로 없으니 세수만 하고 자라고 했다. 내가 꼴찌로 들어갔는데 땀이 제법 나서 샤워를 하고 싶었다. (한겨울에도 냉수로 샤워하던 때라..) 조용히 물을 끼얹으면 스님도 깨지 않을 거야. 대야에 물을 받고 바가지로 조심조심 샤워를 시작했다. 이제부터 기억은 슬로모션이다. 쪽문이 열리고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물론 빨갛게 온몸을 드러내고서 말이다. 하얀 노스님이 엉기적거리며 나오며 신발을 신으려다 한참만에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셨다. 살짝 당황, 헛기침 한번 하시곤 다시 엉기적거리면서 뒤돌아 쪽방문을 열고 들어가셨다. 얼어붙은 채 멍하니 있던 나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려고 물을 끼얹고 있는데, 쪽문이 다시 열리며 (이번엔 얼굴만 내밀고는) 온 산이 떠나라 호통을 치셨다. 가만 누워서 생각하니 화가 나고 당혹스러웠나 보다. 나는 옷도 못 입고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야단을 맞았다. 좀 추웠다. 머리에서 비누거품이 흐르고 있었던 것 같다.

칫. 다른 스님들 다 깨겠네. 무슨 스님이 이렇담.
나는 왜 야단을 맞는지 이유를 몰랐다. 젊고 탱탱한 육체에 음심이라도 생기셨나? 혹은 부러웠나?
내 잘못은 자기가 용변 보려는 자리에 내가 발가벗고 있었던 것 밖에 없잖아?

애초에 내 샤워가 숙면을 방해한 것도 아닐테다. 그랬다면 그렇게 한참만에 나를 발견했을 리도 없다. 방에 들어가서 가만 생각해 보니, 정말 참을 수없을 만큼 오줌이 마려웠던 걸까?

노발대발 호통을 쳤다는 것만 기억나고 무슨 말로 욕을 했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도 당혹스러웠던지라..

책에 보면 스님이 호통을 치면 머리가 탁 깨지면서 깨달음이 찾아온다.
현실에서 스님이 내지르는 호통에는 아무런 깨달음이 없었다..

수양의 흔적보다는 그저 자기감정 주체 못해 달아오른 늙은이였을 뿐.

좀 더 쿨하게 하면 어때서. 이를테면;
그냥 못 본 척 변기에 걸터앉아 볼일 보면서, "안 춥냐?" 한 마디 날려주덩가.

떠날 때까지 스님도 별로 없는 그 절에서 다시는 그 노스님과 마주치지 못했다.

지금쯤이면 사리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테지만.. 그 절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