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flaneur, p.m. 4:30 2009. 7. 14. 11:55
어떤 글을 읽을 때, 특히 요즘 주위의 블로그를 살펴보다가 가끔 어떤 사람일까, 누구일까? 궁금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항상 나는 혹시 이 블로거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닐까 상상하곤 한다.

그건 내 오래된 습관 같은 건데, 어릴 때 동화책을 읽을 때 나는 항상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을지문덕이 수행을 위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 우리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집 올라가는 길을 떠올리고 있었고, 대갓집에 모여 회의를 하면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기와집에 사는 친구집을 상상하는 식으로. 처음에는 어쨌는지 모르겠는데, 나중에는 크지도 않은 우리 동네의 골목과 집과 산길이 내 상상의 목록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더 넓고 무한한 공간인 그곳을 내 주위에 있는 친근한 것으로 축소하는 방식의 상상.

블로그를 돌아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을텐데, 나는 항상 어떤 블로그에서 내가 아는 누군가의 흔적을 찾곤 한다. 부산에 살고 있는 그녀는 내 외사촌이 아닌지, 공학도인 그는 내 후배가 아닐지, 알콩달콩 감성적인 글을 잘 쓰는 그녀는 또 누구일까?

새벽에 갑자기 오래 묵은 이 생각이 떠오른 것은 아주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한 블로그에 김용에 대한 글이 올라와서이다. 서양철학을 위시한 다양한 관심사에 더하여 김용의 중국어 원문을 읽을 줄 안다? 갑자기 떠오른 사람이 하나 있다. 오래동안 잊고 지낸 사람이다. 선배이고 내가 들어가기 전에 대학원을 그만뒀지만 또 어찌어찌한 인연으로 여러날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내 소극적인 성격을 지적하며, 최소한 자기가 가진 것만큼이라도 표현하기를 요구했던 사람이다. 자기 가진 것 이상을 이야기하는 그에 대한 불만이 없지도 않았다. 그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흔적처럼 내 몸을 구성하고 있다. 사실 나는 이미 그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문학계의 거두인 아버지가 부럽지는 않았지만, 그 때문에 어릴 때부터 다양한 책, 지식,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그의 환경은 참 부러웠었다. 유학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손금을 볼 줄 안다면서, 사주에 대륙에서 유학할 운명이 있다고 구라를 떨었다. 미국으로 가라고 했다. 그때는 유학을 거부했고, 몇년이나 지나서 또다른 대륙인 중국에 유학을 가 있다. 아주 구라는 아니었던 건가?

결혼하기 전 상해에 잠깐 들렀을 때 마지막으로 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가 봤던 그 블로그는 내가 떠올린 그 형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다만 글에서 비슷한 성향의 누군가를 떠올려 보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작게 축소해야만 나는 조금 더 이해한 느낌이 든다. 白.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상도 사투리  (8) 2009.07.17
과학적이고 부도덕한 진리 릴레이  (8) 2009.07.02
상해의 어느 길거리에서...  (0) 2009.06.24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