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flaneur, p.m. 4:30 2009. 6. 24. 23:04
스터디를 마치고 지하철에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잠깐 사이 많은 일(?)이 있었네요.

제가 있는 지하철역 근처에는 오토바이, 삼륜차 등이 떼로 모여 있습니다.
버스는 구석구석 다니지 않고 걷자니 좀 멀고, 그렇다고 택시를 타자니 좀 비싼 근처를 가려고 할 때
가장 싸게 갈 수 있는 게 삼륜차입니다.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건 오토바이일 테구요.

문제는.
이 두 가지 가장 편하면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불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삼륜차(인력거)는 대부분의 큰 도시에서 불법으로 처리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승객을 태우고 달리다가 경찰을 만나면 이상한 골목으로 질주하기도 합니다. (당근, 승객은 엄청 겁에 질리겠죠. 납치당하는 기분일 겁니다.. 인력거꾼도 죽을 맛을 텐데 말입니다..)

역에서 집이 멀지 않아 걸었습니다..
갑자기. 삼륜차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지나가더군요. 좁은 곳을 통과하느라 나란히 줄을 서서 달렸지만 삼륜차가 그렇게 빨리 달리는 모습, 처음 봤습니다. 엇? 가만 보니 모두 승객이 없군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 길을 걷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집중되었습니다.
뒤를 이어 오토바이 행렬들이 오고 있었고, 그 너머에는 하얀 경찰 오토바이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단속을 피해 달아나는 삼륜차의 무리였던 겁니다.
오토바이도 불법이지만, 튀기가 쉬워서인지 꾸물대고 있다가 경찰이 다가오니까 그제서야 전속력으로 흩어지더군요.

길을 건너 집쪽으로 향하면서도 삼륜차 무리들이 잘 피했을까 궁금해서 계속 그쪽을 쳐다보면서 걸었습니다. 제가 걷고 있던 길쪽에서는 신강의 젊은 친구들이 몰려오고 있더군요. 소문이 아주 안 좋은 친구들입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슬람 계통의 이 친구들이 몰려다니면서 슬쩍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죠.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 뒤쪽으로 가서 가방을 열어서 지갑을 꺼내가기도 하고 겨울에 여자애들 외투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기도 합니다.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가면 뒤에서 뛰어와서 가방 지퍼를 열기도 한다더군요.
다행히 저는 근처에서 한번도 비슷한 일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 중 잘 생겼는데 행색이 약간 초라한 친구와 눈이 마주쳤죠. (신강 이슬람 계통 젊은이들, 꽤 잘 생겼습니다..남자가 봐도 반하겠더군요.) 그러다 저는 맞은편의 삼륜차가 궁금해서 그쪽을 계속 쳐다보며 걷다 서기를 반복했습니다.

갑자기. 슬쩍 뒤를 돌아봤는데 그 친구가 내게 다가오다가 바로 뒤를 돌아 가 버리더군요.
제가 백팩을 매고 있었거든요. 든 건 없습니다만. 조금. 등골이 오싹해지더군요.
아~ 바로 이런 경우겠군놔.
그 친구가 만약 내 가방을 건드렸다가 시비가 붙으면 주위에 갑자기 그의 동료들이 몰려와 저를 에워쌓을 겁니다. 쓰리 당하는 여학생을 도와주려다, 한놈인 줄 알았는데 떼거리로 몰려와 분을 삭혀야 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럴 땐, 무조건 분을 삭히고 물러나야 합니다!!! 젊은 혈기, 아무 소용 없어요. 저 사람들은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 빌미를 주지 않게 적절한 타이밍에 돌아봐서 다행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한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던(익히 들어왔던) 두 가지 광경을 보게 되네요.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