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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2 상해의 채석장에 들어설 초저층 지하호텔 14
상해에는 고층건물은 수없이 많지만 지하로 깊이 파고 들어간 건물은 별로 없습니다.
모래땅이거나 퇴적층이라서 조금만 파 들어가면 물이 나옵니다. (게다가 상해라는 땅 자체가 바다보다 낮습니다.) 지하로 내려갈 공사비로 몇 층 더 올리는 게 유리한 셈이죠. 따라서 옛날부터 옥탑방(亭子間)은 있어도 반지하는 없었나 봅니다. 물론 초고층 빌딩이나 대형상가를 지을 때는 기본적으로 지하로 좀 파고들긴 할 겁니다. 안 그랬다간 얼마전 막 옮겨심은 나무가 쓰러지듯 그대로 반듯하게 넘어간 어느 아파트 꼴 나겠죠?



비오기 직전이어서인지 파란 하늘에 구름이 이쁘게 낀 선선한 날에 자전거를 타고 조금 돌았습니다.

지난번 다녀온 서산(佘山)에서 조금 더 나가 천마산(天馬山)이란 곳까지 갔습니다. 알고보니 상해 근교에 "운간구봉(云间九峰)"이란 이름으로 아홉 개의 산이 있나 봅니다. 상해쪽은 구름이 참으로 낮게 내려오나 봅니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아홉 봉우리라니요! 제일 높다는 천마산이 고작 해발 99.8미터입니다. 실제로 지면에서 보면 어릴 적 소 먹이러 다니던 우리 동네 뒷산보다 낮습니다. 역시나 자전거 때문에 산 위로 올라가 보지는 못했네요. 천마산 위로 기울어진 탑이 보입니다. 이것도 이 근교에서는 나름 유명한 사탑이라고 합니다.

같이 간 중국 친구가 산을 깎아 만든 구덩이 이야기를 합니다. 원래는 산이었는데 채석을 한 끝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고 말하더군요. 별다른 명칭은 없고 그냥 "천마산심갱(天马山深坑)"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지도에도 없고 위성사진도 이쪽 일대는 그다지 정밀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미리 알고 가기 힘듭니다.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적어서, 천마산 일대에서 물어봐도 모르는 사람이 많더군요. 살짝 동네로 더 들어가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대략의 방향은 가리켜 줍니다.

어쨌든 물어물어 횡산(横山)이라는 나트막한 동산 부근에서 어떤 촌로에게 위치를 알게 됩니다.
저는 산을 깎았다고 해서 백록담이나 천지처럼 산의 외형은 남아 있고 그 속에 거대한 분화구가 있는 모양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촌로가 가리킨 곳에는 그냥 나트막한 콘크리트 담장이 하나 보일 뿐 허허벌판이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그 담장을 뛰어올라 꼭대기에서 바라보니 다음과 같은 풍경이 펼쳐지더군요.





깊이는 대략 100미터, 길이가 240미터, 폭이 160미터라고 합니다. 보통은 20미터 정도 깊이의 물이 차 있구요. 요즘은 자전거 탈 때 사진기를 안 들고 다니는데, 정말 후회가 되더군요. 뭐, 들고 갔어도 광각이 없어 제대로 담지 못했겠지만요. 중국친구가 찍은 사진도 직접 눈으로 볼 때의 웅장함을 충분히 담지 못했어요. 담장 위에서 내려다보면 머리가 아찔해졌습니다. 약간 압도된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채석할 때 사용된 듯한 계단이 비스듬이 보이고, 다른 쪽 모서리에선 까마득히 어떤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찾은 건데 물이 꽤 많이 차 있습니다. 인터넷에도 적당한 사진이 없군요.
(아마도 우기에 잠깐 물이 불어난 것은 아닌 듯. 비 좀 온다고 불고 줄고 할 규모가 아님. 사진에서 드러난 주변환경을 따져보건데 훨씬 옛날 사진이고, 이 "호수"를 다른 식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이 있는 최근에 물을 퍼낸 게 아닐까 사료됨) 

아래 사진은 예전 사진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조감도일 것 같기도 하네요. 잘 모르겠어요. 주변에 못 보던 건물이 가득한데, 지금은 재개발 때문에 구덩이 주위의 건물은 거의 철거된 듯합니다. 아무튼 구덩이를 위에서 조감하면 대충 이런 모양이 나옵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조금 뒤져 보니 원래 채석장이었던 이 곳은 몇 십년째 버려져 쓰레기장 비슷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렇게 깊게 파내려 갔는데 사방이 암반이라 빠져나갈 곳이 없으니 당연히 물이 고였을 거고, 온갖 폐수로 썩어갔겠죠. 상해 시내에서 아무리 파내려 가도 돌맹이나 암반층은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상해라고 불리는 땅의 대부분은 원래 바다였으니까요. 나트막한 산이 있던 이 곳은 그래도 대륙의 일부였나 봅니다. 이 곳에 어떤 채석장이 있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명칭도 없습니다. 다만 산 하나가 사라지고 그 곳의 골재는 어느 건물의 일부가 되었겠죠.

아무튼 원래 산이었던 곳을 파서 평평하게 한 것에 그친 게 아니라, 원래의 산보다 더 깊게 파내려 간 대륙의 기상에 놀랄 따름입니다.

그런데 한 번 더 놀랄 게 남아 있습니다.

원래 유명한 지역도 아니었고 볼 것도 별로 없었으니 십여 년째 잊혀져 있다가 얼마 전 우연히 누군가의 눈에 띄었나 봅니다. 우리가 들어간 입구 쪽에 관리 사무소 비슷한 게 있어서 보니, 이 곳에 2010 말 준공 예정으로 지상2층, 지하17층, 수면 아래로 2층 규모의 5성급 호텔이 들어선다는 포스터가 눈에 뜨입니다.

지상2층에는 대충 프론터, 식당, 회의실 등의 역할만 하고, 400여 개의 객실을 수면 위 17층에, 수면 아래 1층(18층)은 물밑을 보면서 쉴 수 있는 식당과 커피숍 등이, 가장 낮은 19층에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总统套房)까지 갖춘다고 합니다. 인공폭포도 빠질 수 없지요. 넓게 펼쳐진 호수(?)에서는 수상 스포츠도 즐길 수 있게 하구요. 아무튼 물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겠습니다.

(전후맥락에 약간 찜찜한 느낌이 없지 않으나, 그런 걸 생략하고 보면) 발상 자체는 상당히 기발합니다. 완공되면 아마도 굉장히 독특한 호텔로 소개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주위에 오락시설과 쇼핑몰이 들어서, 천마산 서비스 단지(天马山现代服务业集聚区)의 한 중심을 이룬다고 하네요. 상해가 크고 넓어질수록 그 주변의 한적한 시골들이 모두 관광지로 변해갈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상해에서 소주까지 비는 곳 없이 가득 차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호텔이 완공되면 해발 -65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혹은 깊은) 호텔이 된다고 합니다. 이로써 중국은 세계 최고를 하나 더하게 되겠군요.

참고링크:
http://www.ehomeday.com/news/2007-10/2007101684817.htm
http://www.xcar.com.cn/bbs/viewthread.php?tid=5734337
http://blog.sina.com.cn/s/blog_4cd02152010097eq.html

혹시나 해서 위치확인 삼아 구글어쓰를 함 돌려봅니다. (예전에 구글어쓰 초창기에 시험삼아 써보고 처음 돌려보네요. ^^)
위치를 알고 봐야 정확하게 짚을 수 있지만 나오긴 하는군요. 검색창에 "天马山深坑"(유사검색어: 天马深坑, 天马山采石坑, 天马采石坑, 横山坑)을 치면 바로 뜨지만, "구덩이"가 아니라 호수처럼 나옵니다. 위에 검색해 둔 옛날 사진보다 물이 더 많았나 봅니다. 저는 4.2 버전을 사용했는데, 아마 최근 버전에서는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화면을 살짝 눕혀도 구덩이가 깊이로 표시되지 않고 호수처럼 표시됩니다. 광활한 평야 저 멀리 야트막한 천마산이 보입니다.

이번에 제가 이동한 경로를 표시해 보았습니다. 대략 54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제법 크게 보입니다.)

혹시나 해서 버스노선을 써 둡니다.

坐车路线如下:万体沪淞线直达松江乐都路车站,然后站内转松天线横山下。逛完大坑后再坐松天线去天马山,山上可露营。天马山沪佘昆线约1个半小时后可返回。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