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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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6 버려진 다리 - 횡사도 구조부두 2
한낮. 자전거는 해변을 따라 섬을 돌다 버려진 다리 앞에 도착했다. 예전에 이 다리에 왔었다며 성큼 다리 위로 올라서는 반군을 따라 들어갔다. 버려지고 아무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다리로 만들어진 이상 어딘가로 데려다 줄 것이다. 저 멀리 뭔가 시설물이 보이는 것도 같다.

입구에 위험하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유심히 살펴보지는 않았다. 시작부터 단어인지 전치사인지 끊어 읽히지가 않았고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가벼운 경고문이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반군이 앞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어 그저 뒤따라갔을 뿐이다. 예전에 왔었다고 하질 않나. 그것도 밤에 여럿이서 같이. (깜빡 했다며 예전에는 "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반군은 다리 끝에서 알려주었다..)

왼쪽으로는 상당히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강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물(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해변이라고 해 두자!)에 닿기 전, 푸른 풀밭에는 물소들이 풀을 뜯고 습지에도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을 것 같다. 마구 뛰어 들어가 게도 잡고 조개도 잡고 그러고 싶은 풍경이다.

입구: 열려진 쇠문을 통과해 들어가는데, 꽤 멀다. 그냥 봐서는 거리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뒤돌아보면 멀리 전망대 같은 게 보이기도 한다. 아직 땅에서 별로 높지도 않아 뛰어내리면 폭신폭신한 땅에 사뿐히 내려앉을 것만 같다. 파란 하늘에 샤방샤방 흰구름 낮게 깔린 뒤쪽에 비해 앞쪽 풍경은 왠지 심상치가 않다.

상당히 멀리 왔지만 아직도 끝은 아득하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느새 발밑은 습지가 아니라 물이다. 바닥이 땅인 것과 바닥이 물인 것의 차이. 다리 위 난간에 기대어 흐르는 물을 보며 명상에 잠기곤 했다. 난간이 없는 다리에서 그러나 명상은 배부른 소리!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이 일렁되는 걸 보면 압도되는 것 말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통로 폭이 2-3미터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바다 쪽으로 갈수록 바람마저 거세져 오금이 저려온다. 사진사 반군은 사진도 찍지 않고 앞으로 그냥 뚜벅뚜벅 걷기만 한다.

배는 통통 떠나니고 저 멀리 중국 군함도 간간히 지나 다닌다. 나중에 지도를 확인해 보니 한가로운 농촌과 어촌 분위기의 횡사도 곳곳에 해군 기지가 있었다. 오른쪽으로 산업부두 비슷한 게 보인다. 아마도 지금 이 다리가 버려지고 저곳에 다른 시설을 만든 게 아닐까?

이제 거의 다 왔다.. 중간을 넘어서면서 혹시 바람에 날려가지 않을까, 제발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최대한 무게중심을 낮춰서 조심조심 걸었다. (그렇지만 반군에게는 최대한 대범한 척하면서... ㅠㅠ) 인간이 만든 도시라는 벽 안에서, 인간들끼리 서로 잘난 척하며 으시대지만 그 바깥으로 조금만 벗어나 벌거벗은 채 자연과 만나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아무 장비 없이 저 물 속으로 첨벙! 하면 그걸로 끝이다. 진흙 파도 속에서 내 수영장 자유형 실력이 먹히기나 할까?

나는 물을 겁내고 반군은 자물쇠 없이 두고 온 자전거를 겁낸다. 이제 누군가 훔쳐가도 보이지도 않고, 설령 알아채고 뛰쳐가도 자전거 되찾기는 걸렀다. 느낌으로는 1km는 족히 걸어온 것 같다.

형, 수영 잘 해요?
수영 좀 한다고 소용 있을까? 그나저나 우리 둘이 빠져도 아무도 모르겠다..
쥐박이를 데려와서 살짝 밀어넣으면 참 좋겠네요.
걘 겁이 많아서 요까이 오지도 않을 거야..
하긴요...
반군아, 혹시 내가 빠져도 구하러 뛰어들거나 그러진 마라..
.. ... 하! 그거 굉장히 어려운 문젠데요?


뼈대만 남은, 각각 바닥으로 발을 딛고 서 있지만 서로 연결되지는 못한 시설물들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똑같이 폐허라도 오른쪽은 깜깜하고 왼쪽은 밝다. 한때는 배가 정박하고 뱃사람이 쉬어갔던 곳이겠지. 굉장히 상상력이 자극되는 공간이었는데. 왜 육지가 아닌 물쪽으로 이렇게나 멀리까지 이런 시설물이 필요했을까? 왜 버려졌을까?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반군아, 꼭 미래소년 코난 분위기 나지 않냐? 왠지 오래되고 튼튼한 게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건물 같아. 횡사도 정도 규모에 커다란 상업항구가 필요하지도 않았을 거고, 일본 애들은 자기 나라에서 가까운 이곳에 항구를 만들어 잠깐 정박했다가 상해 쪽으로 치고 들어갈 때 전략적으로 좋잖아. 저기 입구쪽 전망대도 그때 같이 만들어진 거겠지.

왠지 그럴듯한데요? 확실히 일제가 튼튼하긴 하죠!

다리 양쪽에 커다란 수송관은, 그게 구리든 쇠든 대약진운동 때 뜯어가서 녹혔을 거야. 그때 그런 짓 많이 했잖아. 여기를 기지로 쓰려면 물이나 가스, 기름 같은 보급품이 필요했을 건데 아주 튼튼한 쇠파이프가 놓여있지 않았을까? (그거라도 있었으면 난간 역할을 했을 건데...ㅠㅠ)
미래소년 코난의 시대배경이 자그마치 2008년이니만큼, 1940년대 일본이 만들어놓은 과거의 유물에 지나간 미래의 폐허를 떠올리는 것도 영 말이 안 되는 거는 아니겠다.. (어차피 소설이니깐! ^^)

물과 육지를 만나는 곳에서도 비슷한 폐허 이미지가 있었다. 다리 위에서 나는, 물에 식겁하고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에 압도되었다. 그런 느낌은 사진으로도, 글로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끝까지 오면 비교적 넓은 공터가 있다. 그곳에 주저앉아 잠시 쉬어갔다. 반군은 노래를 흥얼거렸고 나는 (바다 위라서) 눅눅한 공기에 아랑곳 않고 담배를 피웠다. 16미터.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반군은 이 높이를 가늠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적어도 몸이 바로 부서지지는 않겠다. 그러나 여전히 쉴새없이 파도가 덮쳐와 편하지도 않겠다.

 태호 강변에는 영산이라는 산이 있고, 산 중턱에는 팔 십 팔 미터 불상이 서서 세상을 내려보고 있다. 석가모니불이다. 십 육 미터라고 들었다. 계단 어디쯤에서 십 육 미터의 높이를 가늠해 보았다. 어림할 수 없었다. 아슬아슬한 높이였겠다. 어떤 각오.같은 것이 필요했겠다.

반드시 죽어야 한다.
요행이라도 살아나서는 안 된다.

 십 육 미터의 높이는 그런 각오의 높이처럼 보였다. 반드시 죽기 위해, 마지막 남은 몸뚱아리로 최후의 응원을 보내기 위해 그 분은 두 주먹 꼭 쥐고 수직으로 내리꽃혔을 것이다. 팔 십 팔 미터는 사람의 높이가 아닌 것이고, 십 육 미터는 살아서 닿을 수 없는 높이 같았다.

by 반군, for gogh

 
몸에 물기가 많아 짜 버리지 않으면 힘들 것 같던 5월 24일, 처음으로 반군과 자전거를 타고 바다까지 달렸다. 짭짜름한 땀이 흘러 몸은 가벼워졌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나는 아래쪽으로 뛰어내릴 생각은 없기에 각오 같은 건 하지 않았고, 그저 폐허를 보며 미래소년 코난만 생각했다. 내 발가락 힘으로는 저쪽까지 뛰기가 힘들겠는 걸?

되돌아오는 길도 반군이 앞장섰다. 발걸음은 훨씬 가볍지만 물기 많고 거센 바람에 여전히 조심스럽다. 돌아오며 이 다리의 일제기원설에 대해 계속 떠들어댔다. 그래야 자연의 목소리에 압도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입구로 돌아와 편안해진 마음에 아래쪽으로 내려가 본다. 버려진 낡은 배가 있었다. 발이 땅을 딛고 있을 때 몸이 이렇게 가벼울 수 없다.

들어갈 때 해석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문구를 다시 살펴 본다. 도대체 이렇게 위험한 다리를 왜 출입통제하지 않냐는 말이다. 버럭! 화가 날 지경이었다. 이 문구가 해석되지 않은 것은 내가 "引橋"라는 단어를 몰랐기 때문이다. "진입교"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경고: 진입교가 끊어져 위험하니, 출입을 엄금함!"

횡사도의 어느 절에 들어간 김에 나이 지긋하신 관리인에게 버려진 다리에 대한 걸 물었다. 나중에 검색해서 찾아보려면 이름이라도 알고 있어야 하니까. 그러나 "청꿍"을 "성공"이라고 발음하시는 할아버지의 사투리에서 딱 한 마디,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만 겨우 알아 들었다. 어찌어찌하다 "인교"가 단어라는 걸 알게 되었고, "횡사도"와 "인교"를 검색어로 하여 겨우 다음 사실을 알아냈다.

횡사도 구조부두(横沙救助码头)


횡사도는 장강의 끝자락, 오송강(황포강) 입구 사이에 있다. 예전부터 횡사도 인근에서 대형선박의 조난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1975년 상해구호국(上海救捞局)의 제의로 횡사도에 구조부두를 건설, 구조선박의 대기 및 일정량의 구호물자 비축하여 장강하구에서 조난사고가 발생했을 시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게 함. 1976년 12월 착공에 들어가 1977년 11월에 부분완성된 상태에서 사용을 시작하였고 1979년12월에 완공. 이 부두는 횡사도 서쪽 강변에 위치, 해군부두에 인접해 있으며 서북쪽으로 상해항도국 장강구 판사처 부두와도 가깝다.


전체 길이는 370미터. 130미터의 강질 부잔교[각주:1](1.7만톤급 낡은 선박을 개조하여 만듦) 구조로 되어 있고,. (그외 다른 구조물에 대한 잡다한 설명이 부가되어 있지만 생략! 항구관련 용어는 너무 생소해요..)  横沙救助码头,位于宝山县横沙岛西滩,紧靠海军码头,西北与上海航道局长江口办事处码头相邻。岸线全长370米,占地16亩。结构形式为钢质浮码头(由1.7万吨级旧船底改建而成),长130米。钢过桥(长18米、宽4.5米)、桥吊桥、砼引桥(长225米、宽6米)、桥头堡引堤(长82米、宽6.5米)坡岸。


이 부두가 건설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변화와 농지조성을 위한 간척사업 등으로 인해 매년 50-60cm 침적되면서, 80년대 초부터 사용이 정지되었다.

설명이 애매한 부분은, 우리가 걸어서 끝까지 간 그 다리의 길이가 370미터인지 아닌지이다. 내 느낌으로는 훨씬 길었는데.. (혹시 중국어로 노출된 부분을 설명해줄 수 있는 분이 계시면 후사함![각주:2]) 다리 끝부분에 듬성듬성 남은 구조물은 원래 부잔교로 서로 연결되었다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일제가 만들고 대약진운동 때 고철을 뜯어내기는커녕(현실에서 내 추리는 맞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문혁이 끝나던 무렵 착공에 들어가 완공되자마자 얼마 사용하지도 못하고 버려진 듯하다.


횡사도라는 섬 자체가 너무 조용한 곳이어서 관광지로 크게 뜰 가능성은 적을 것 같다. 장강 하류의 세 섬(숭명도, 장흥도, 횡사도) 중 가장 규모가 작기 때문인데, 유일한 특징이라면 가장 바다쪽에 있는 섬이라는 정도. 그렇더래도 저 다리를 그냥 폐쇄할 것이 아니라, 난간을 설치하여 안전설비만 갖춘다면 꽤 괜찮은 폐허 관광지가 될 것 같다. 너무 많은 사람이 찾으면 분위기 자체가 바뀌겠지만. 그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버려진 다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폐허에서만 가지고 올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 거니까.



  1. 부잔교 [, floating pier]: 부두에서 폰툰(pontoon:물에 뜨도록 만든 상자형의 부체)을 물에 띄우고 그 위에 철근콘크리트 ·강판 ·목재로 바닥을 깔아 여객의 승하선 ·화물의 적양() 에 편하도록 만든 구조물이다. 폰툰을 해저에 체인이나 와이어 로프로 고정시키고 그 위에 설치한 간이부두로서, 조석 간만의 차이가 큰 곳에서 많이 이용된다. [본문으로]
  2. 후사.라고 할 것까진 없고 8월10일 이후 책 한권 선물해 드릴께요.. [본문으로]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