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문화혁명/丹靑 2009. 6. 27. 18:02
상하이 하면 떠오르는 색깔은 어떤 걸까?


흐리고 습한 상하이의 날씨는 상하이를 무채색의 도시로 떠올리게 한다. 이 도시는 색깔이란 게 없고 그라데이션만 살아 있다. 명암만 살아 있는 도시, 가장 밝은 곳과 가장 어두운 곳이 공존하는 도시, 그렇지만 그 각각이 다른 색깔을 띤다고 하기보다는 같은 색의 농도와 계조가 다를 뿐인 그런 도시. 내가 떠올리는 상하이의 이미지이다.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 중남미의 원색찬란함, 티벳의 고요하지만 강렬한 색감은 상하이에서 떠올리기 힘든 무엇, 에너지 자체가 다르게 표출된다.

Pudong, 90x120cm.

반군이 쓴 글에서 읽은 프랑스에 주로 거주한다는 어느 미국인 화가가 그린 상하이를 떠올려 본다. 상하이를 마치 지중해를 그리듯 원색으로 표현했다, 왜 그렇게 그렸나는 물음에, 자기는 상하이에서 젊고 생동하는 에너지를 보았다고 대답했다고. 그 에네르기를 표현하는 방법이 강렬한 색감이겠다. 그가 보는 상하이가 그럴 수는 있다. 그의 상하이는 그런 모습, 그런 색깔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게 왜 상하이를 그런 색깔로 표현했냐고 묻게 되고, 그렇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상하이와 그 색깔은 어긋나 있음을 뜻한다. 그가 해석한 상하이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우리가 즉각적으로 떠올리는 상하이와는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지고 들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의 이름은 제프리 헤싱(jeffrey hessing)이다. http://www.jeffrey-hessing.com/이라는 개인 홈페이지도 가지고 있고, 거기서 중국에서 그린 그림과 상해를 그린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어떤 색깔로 상하이를 표현했는지 살펴보려고 홈페이지를 열어본다.

The Bridge, 100x80cm.
푸장반점 꼭대기에서 소주하와 와이바이두 다리 너머를 바라본 풍경이다.

The River, 97x130cm

The Bund, 90x120cm

Shanghai Sunset, 100x120cm

The king and queen, 100x80cm.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는 제프리 헤싱.

그림을 보지 않고 떠올렸을 때만큼 강렬한 색감은 아니다. 나는 더 강렬한, 눈이 부신 원색을 기대했다. 그 강렬함은 어쩌면 색의 대비에서 올 듯한데, 헤싱이 쓰는 색은 원색이긴 하되 강한 대비가 없다. 그림에 대해서도, 색감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게 없지만. 그는 그저 자기가 선호하는 색깔을 상하이에 덧씌운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가 그린 뉴욕, 이스라엘 등도 비슷한 색감이다. 다만 상하이는 그런 도시와 비교해 볼 때 오히려 색의 대비가 덜하고 건물과 건물을 구분하는 선을 제외하면 색들이 서로 섞인다는 느낌마저 든다. 곱지만 포스가 없다.

색의 대비, 즉 서로 다른 색깔들이 부딪히고 충돌하는 사이에 내뿜는 긴장을 나는 상하이에서 느낄 수 없었다. 너와 나는 다름이 아니라 조금 더와 덜의 경계에 놓여 있다. 제프리 헤싱의 그림이 상하이의 에너지를 잘 표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존재의 다른 색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그걸 상하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까?

상하이의 진정한 얼굴은 밤에 드러난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밤이 없는 도시, "불야성"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야(夜)상해! 1865년에 가스등이, 1882년에는 전기가 상하이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세련된 <상하이 모던>을 노래한 리어우판의 상대편에 루한차오의 <네온불빛 너머>가 있다. 밤이 되면 온갖 색의 네온사인과 광고판이 휘황찬란하지만 번화가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어떤 어둠이 펼쳐지는지를 루한차오는 보여주며, 그곳이 단순한 암흑이 아닌 다양한 계조를 가진 인간군상이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내가 떠올리는 상해 사진은 모두 20세기 초의 흑백사진들이다.
상하이는 아무래도 흑백으로 찍어야겠다. 혹은 색을 날려버리고 계조만 살아있게.

상하이를 어떤 색깔로 떠올리시나요?



보너스: 제프리 헤싱이 그린 만리장성과 운하 풍경.
Water Village, 65x81cm.

The Great Wall, 65x54cm.

Posted by lunarog
문화혁명/丹靑 2008. 12. 18. 17:43
최근 중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유화 작품이 있다.


후밍(呼鸣)이라는 중국계 여성작가의 작품이다. 보기에는 문혁을 정점으로 한 혁명적 리얼리즘을 고취시키는 평범한 선전화인 것 같지만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부분이 있다. 바로 여군의 신체 중 가슴과 엉덩이, 눈 부위이다. 획일화되고 무표정한 남자 군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여군은 마찬가지로 비장한 자세로 절도 있게 움직이지만, 우리는 투명한 군복 속으로 비쳐나는 탱글탱글한 엉덩이와 오똑 솟은 가슴, 그리고 유두를 확인할 수 있다. 절도있는 자세와는 달리 눈빛은 색기로 넘쳐 흐른다.

이에 대한 중국 인터넷의 반응은 건강하고 풍만한 여성미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라는 소수의 긍정적인 시선보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이다. "그녀는 부대에서의 교육과 해방군의 영광스러운 사명을 잊은 저속한 취미의 사람이다. 그녀의 몸에 표현된 것은 육욕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기본적으로 아무 사상이 없다고 생각된다."


 

후밍은 이미 시드니에 거주하는 중국계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여류화가로 통한다. 이들의 의견도 반반이다. "후밍의 유화작품은 풍유비둔(丰乳肥臀 ; 풍만한 가슴과 통통한 엉덩이. 모옌의 소설 이름이기도 하다.)의 인물형상만 가득하지 다른 의미는 찾을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신세대 중국여성, 특히 중국 여군의 다른 측면을 잘 구현하였다. 부드러움과 함께 용감하고 건강한 미를 보여준다."라는 입장이 공존한다. 후밍의 작품은 현재 논쟁의 중심에 있으며, 그 가치를 높이 사는 이들도 많아 798예술단지를 비롯한 중국내 여러 지역에서 전시회를 가졌고, 경매에서도 작품당 20만 인민폐(4천만원 정도) 내외에서 팔려 나간다고 한다.

 

작가 후밍은 1955년 북경 태생으로, 1970년에서 1989년까지 20년 간 중국인민해방군에 복무하였으며, 군인 신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79년 천진미술학원 중국화과 수학, 93년부터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90년에 뉴질랜드로 출국하여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999년부터 호주 시드니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 내 스타일과 비슷한 작풍을 보인다면 그 즉시 내가 바꾸겠다!"라고 공언한다. 아카데미 화풍에서 기피하는 금기를 건드려온 그녀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말이겠다. "나는 내 자신의 원시적인 감각을 존중하며, 자신의 창작 양심을 존중한다. 나는 정말 진지하게 근육 하나하나를, 젖가슴을, 엉덩이를 그린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그리고, 가장 편안게 생각되는 자세를 배치한다. 섹시함은 내 그림에서 영원히 추구하는 목표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살아 있으며, 나를 좋아하고 내 그림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 나는 시장의 조작에 코 끌려 가는 것을 언제나 경계한다."


서양 아가씨와 금붕어 그림을 그리면 잘 팔리지 않겠느냐는 호주 쪽 화랑 관계자의 청을 거절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들이 중국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도 서양 아가씨를 잘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금붕어는 전통회화에서 "정부, 첩"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래 그림의 제목은 "네 미녀Four Beauties"이다.)


중국을 지시하면서 중국의 금기를 깨는 그의 화풍 때문인지, 아직 그녀의 영향력은 중국 내에서만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 전시 목록을 봐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로 화교가 많은 시드니가 아니면 중국이 활동 무대이다. 

主要展览:
1974  军人业余艺术家画展   北京(베이징)
1975  第二届全军艺术展      北京(베이징)
1981  第一届中国青年画展   北京(베이징)
1986  呼鸣个展        北京(베이징)
中日青年友好交流展 日本, 中国
1994  呼鸣个展        奥克兰(오클랜드)
1995  东亚展           奥克兰(오클랜드)
1996  女艺术家作品展   新加坡(싱가포르)
2002  249美术馆呼鸣展  悉尼(시드니)
呼鸣展    新加坡(싱가포르)
2003  Soho美术馆中国美展   悉尼(시드니)
2004  MPG布里斯班中国美展 悉尼(시드니)

 

아무래도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작품자체의 성향보다는 인민해방군에 대한 우상파괴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건 마치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해방하라>가 전작 <물처럼 단단하게>에 비해 더 위험해서가 아니라 모택동 석상을 파괴하고 인민해방군 사병과 사단장 부인의 사랑을 다뤘기 때문에 금서가 된 것과 비슷해 보인다. 신성하게 국가를 지켜야 할 인민군 여성 사병에 성적 시선을 부여한 것이 아무래도 불편한 것이다. 옷을 입고 있음에도 옷 속 여성의 성적인 신체를 바라보는 은밀한 시선을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뜨끔하지 않을 남성이 있을까? 투시카메라로 그녀들을 바라보고 싶다는 욕망?!


어쨌든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래 두 그림이다.


그녀의 블로그(http://www.hu-ming.com)에 들어가면 보다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 각 연도별로 작품리스트가 정리되어 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고대 두루마리 작품을 연상시키는 아래 그림을 찬찬히 뜯어볼 생각이다.

 

Title:Relic of the New 87 Immortals-Following the Sun
Size:140X1400cm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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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연작> 중 "양치기(牧羊人)"  (0) 2008.11.21
Posted by lunarog
문화혁명/丹靑 2008. 11. 21. 13:59
이 "양치기"은 천단칭이 중앙미술학원 78학번 졸업생 전시회에 출품한 7점의 <티베트 연작>의 하나로 초기 천단칭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문혁 이후 소련식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유럽 전통으로의 회귀를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 이후 중국 유화의 주제는 "생활"과 "향토"로 확장되었다.

<티베트 연작>은 모두 라싸에서 그린 것인데, 이 중 <양치기>는 출품을 위해 북경에서 후반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천단칭이 미국으로 떠난 뒤에도 이 작품만은 계속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作品名称:西藏组画·牧羊人 尺寸:80×52cm 年代:1980 质地:木板 油画

그림 출처에서 제공하는 경매가는 2007년 12월 기록으로 35,840,000위안으로 되어 있다. 현재환율 220이 비정상이라 하더라도, 78억원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최소한 당시 환율로도 50억 이상이다.
http://www.zyyworld.cn/world/ren/pic_ja_show.asp?id=34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신문에 따르면 <국학연구원>이 1200만원에 팔린 후, 이 <양치기>도 3200만원에 나갔다고 한다. 천단칭 개인 기록으로는 최고라고 하는데, 중국미술품 중 최고가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국 미술은 약간 부풀려져 있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http://www.24ms.cn/html/news/msxw/20080817/803.html

3200万!陈丹青《牧羊人》再破拍卖纪录

时间:2008-08-17 15:15:34  来源:  点击:15  作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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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前在保利公司艺术品秋季拍卖会上,陈丹青的油画《国学研究院》拍出1200万的高价,但是这一个人作品拍卖纪录仅仅保持了不到24小时。前天晚上,在匡 时拍卖公司的油画专场上,他的代表作“西藏组画”中的一张《牧羊人》拍出3200万的价格,再创他个人作品拍卖的世界纪录。

来自http://www.24ms.cn/

陈丹青“西藏组画”之《牧羊人》上拍卖场前就很被看好。

来自http://www.81art.cn/


    陈丹青在1980年前后创作的七张一组的“西藏组画”系列在上世纪80年代曾在美术界产生轰动,被认为是打破庸俗现实主义绘画的创新之作。在2003年油 画市场刚开始发力的时候,这张《牧羊人》曾在中国嘉德拍卖会上以187万元成交。而四年以后,这张《牧羊人》再次出现在亮马河饭店的匡时拍卖场上就引起广 泛关注。在前晚的拍卖会上,这张画以700万起拍,经过几轮叫价以后,价格就升到千万以上。最后一买家出价3200万竞得。该名买家在落槌以后立即退场, 显然是只对此画感兴趣。

来自http://www1.09ms.com/

    日前陈丹青的油画《国学研究院》拍出1200万就引起广泛关注,而昨天《牧羊人》能拍出3200万的高价,让匡时的油画部经理尤永也感到“超出自己的预期”。“但是一想也是实至名归……这是一张美术史级的作品。”尤永说。 来自http://www1.09ms.com/

    之前两年的现当代艺术品拍卖中,吴冠中、张晓刚、刘小东、岳敏军等先后创造出“标王”一样的价格纪录,而今年秋拍陈丹青的作品则成为新的热点。据悉,今天华辰拍卖公司还将拍卖一套陈丹青1977年创作的水粉作品《周恩来青年时代在天津》。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