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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혁명/80년대 2009. 11. 25. 00:01

중국의 80년대가 가지는 현재적인 의미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을 목표로 작가, 예술가, 학자, 평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80년대의 인물들이 모였다. 2006년 5월 출간된 《80년대 중국과의 대화》는 그 해에만 수차례 재판을 찍을 정도로 호응을 얻었으며, 중국의 대표적인 주간지 《신주간》新週刊 의해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출간 이후 각종 매체에서 앞 다퉈 관련 인터뷰와 비평을 소개했으며, 80년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토론회가 조직되고 책에 등장하지 않았던 다른 80년대 주요인물에 대한 인터뷰가 기획되거나 비슷한 주제의 텍스트가 쏟아져 나와 일시에 "80년대 회고 붐"이 일어날 정도였다.


80년대 중국과의 대화
10점


베이징을 기점으로 한 이러한 80년대 회고 붐은 그에 앞서 중국을 휩쓸었던 1930년대 상하이 회고 붐과 여러 면에서 대별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경제 중심으로서의 상하이와 정치문화 중심지인 베이징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평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옛 상하이에 대한 회고는 경제적인 측면, 즉 물질문명을 둘러싼 중국의 근대화가 어떤 기원에서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90년대적 관심의 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그것의 반대급부로 과도한 소비주의를 낳게 되는데, 이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 80년대라는 시좌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태초의 혼돈을 깨고 덩샤오핑이라는 만물의 어머니가 세상을 재구성하던 시기, 아직 대지와 바다는 구분되지 않았고 모든 것의 경계가 흐렸지만 꿈틀거리는 생명으로 충만했던 시기가 이른바 중국의 80년대였다. 대중문화와 물질만능주의의 만연, 전문화 현상으로 인한 사회 영역 간의 고립과 소외에 직면한 90년대 이후의 중국을 바라보면서 이들은 다양한 가능성이 충돌하며 이상과 열정을 채워가던 신화적 공간으로 "80년대"를 재호명한다. 매체에 의해 부풀려진 면이 없지 않지만, 90년대와는 다른 가능성의 탐색 기제로 80년대를 돌아보고 평가하는 것이 지금의 중국에서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


80년대 중국은 두 가지 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0년 동란으로 불리는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후 개혁개방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태도로 세계를 대면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와 함께 가치관과 사유방식에서도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였다. 문화대혁명의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세대들은 신체에 각인된 문혁의 이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 음영을 털어내고 새로운 사유방식과 문화를 재건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게 된다. 우리로 치면 386세대라고 할 수 있을 이들이 80년대라는 시기를 어떻게 보내왔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어떠한 변화를 시도하였는지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 자젠잉은 80년대를 "당대 중국의 낭만시대"로 규정한다. 90년대 이후가 경제적 이익이 유일한 목표인 시대라면 80년대는 이상과 정신적 열정이 들끓던 시대였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런 시각은 그녀가 책의 뒷표지에서 제시한 80년대와 90년대를 특징짓는 키워드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 80년대 : 격정(激情), 빈곤(貧乏), 열성(熱誠), 반항(反叛), 낭만(浪漫), 이상주의(理想主義), 지식(知識), 단절(斷層), 촌스러움(), 멍청함(), 허풍(), 경박함(膚淺), 광기(瘋狂), 역사(歷史), 문화(文化), 순진(), 단순(簡單), 사막(沙漠), 계몽(), 진리(), 팽창(膨脹), 사상(思想), 권력(權力), 상식(常識), 사명감(使命感), 집체(集體), 사회주의(社會主義), 엘리트(精英), 광장(廣場), 인문(人文), 배고픔(饑渴), 화끈함(火辣辣), 우정(友情), 논쟁(爭論), 지식청년(), 뒤늦은 청춘(遲到的)



* 90년대 : 현실(現實), 이익(利益), 돈(金錢), 시장(市場), 평화로운 변화(和平演變), 정보(信息), 새로운 공간(新空間), 솔직(明白), 처세(世故), 유행(), 개인(個人), 권력(權力), 체제(體制), 성형수술(整容), 조정(調整), 총명(精明), 불안(焦慮), 상업(商業), 소란스러움(喧囂), 대중(大衆), 분노한 청년(), 자본주의(資本主義), 신체(身體), 서재(書齋), 학술(學術), 경제(經濟), 주변(邊緣), 상실(失落), 접속(接軌), 국제(國際), 다원(多元), 가능성(可能性)



이런 식의 배치가 노리는 것은 80년대와 90년대를 각각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으로 양분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각 시기에 주로 사용되었던 단어들을 통해 간명하지만 효과적으로 변화된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이분법이 "우리가 청춘기를 보냈던 80년대에 비해 90년대는 너무 변했어!"라는 주관적인 판단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책은 지금 현재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주류가 되어 있는 80년대의 총아들이 자신의 위치를 특권화한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들은 사상적 속박에 구속되어 있던 문혁 시기와 선을 긋는 한편 물질적 소비주의 시대로 특징되는 90년대와도 차별되는 초월적 공간에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책의 발간 이후 비교적 광범한 사회적 반응을 불러왔던 이유 중 하나로 지금 중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특정 계층이 이 책을 통해 개인적 기억을 되살리고 자신들의 역사를 긍정하려 했다는 비판이 거론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매체를 움직이는 것 또한 이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바로 그 세대이니 말이다.



모든 사람의 기억이 발언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억은 환기되고 다른 많은 기억들은 억압된다. 따라서 이 책에 쏟아진 많은 비평은 "누구의 80년대인가?", "11인의 대담자는 어떤 기준에 의해 선정된 것이며, 그들이 80년대 중국을 대표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모아지고 있다. 그에 뒤따르는 비판은 "평민의식"이나 "하층민에 대한 관심"이 결핍되어 있는 "엘리트주의적인 담론"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담자의 구성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고 저자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일군의 문화계 인사로 제한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문혁 이후 처음으로 시행된 대입학력고사를 통해 대학교육을 받았고 미국 유학을 통해 친분을 쌓았으며 지금 현재 문화계 각 분야에서 성공한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80년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려는 기획이 아니라는 저자의 잇단 해명에도 불구하고 특정 영역에 국한된 엘리트들의 목소리만 담은 것이라는 비판이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과연 이 책의 대담자들이 중국의 80년대에 대한 기억을 대표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왜 베스트셀러 작가인 왕숴王朔 아닌 아청이, 장이머우가 아닌 톈좡좡이, 자장커의 조력자에 불과한 린쉬둥이 대담자로 선택되었는지를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80년대의 영광을 정말 제대로 추억할 수 있는 문화계의 성공한 엘리트라면 장이머우가 제격 아닌가? 거침없는 문체로 대중을 사로잡은 왕숴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이런 면에서 질문을 "누가 기억하는가?"에서 "무엇을 기억하는가?"로 옮길 필요가 있다. 평민, 혹은 대중이라는 신분이 정치적 올바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담자의 사회적 신분이 어떠한가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반성적 거리를 가지고 자기 세대를 구성하는 인자들을 분석하며 물려받은 유산을 활용하는지를 세심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한국 독자에게 이 책은 객관적이고 형해화된 형태로 깔끔하게 정리된 담론에서는 파악하기 힘든 그 시절 중국인들의 개인적이고 평범한 일화를 통해 중국의 감춰진 속살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대담은 원경에서 자신들이 포함된 풍경조차 완전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구성한 것도, 클로즈업으로 다가가서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경험을 구술하는 것도 아니다. 20년이라는 시간 간격은 카메라 렌즈에 비유하자면 시야를 횡적으로 확장시키는 광각렌즈도 아니고 주변 풍경을 싹둑 잘라내고 대상만을 강조하는 망원렌즈도 아닌 50mm 표준렌즈의 시각을 가져다준다. 그러면서도 그 렌즈를 활용하는 각각의 개성에 따라 보다 멀찍이 떨어져 폭넓은 풍경을 보여주거나 지극히 세부적인 문제에 들이대기도 한다. 바로 지금 시점이 80년대를 돌아보기에 적절한 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면 보다 포괄적인 시야가 확보되겠지만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판별하기는 힘들게 된다. 보다 이른 시기에 이런 시도가 기획되었다면 특정사건에 대한 디테일한 분석이 가능했겠지만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 그것이 지닌 의미를 드러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저자 또한 "왜 지금이 80년대를 회고하기에 적절한 시기인가"를 설명하며 현재와 80년대의 거리를 영화의 미디엄 쇼트로 비유한 바 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대담자가 저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 우리에게 딱히 단점으로 작용할 것 같지도 않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80년대 전체에 대한 거대서사를 그리려는 시도가 아니라, 상이한 활동영역과 기질을 지닌 개인의 제한된 목소리와 기억을 들려주고자 한 것이다. 공식화된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적이고 은밀한 기억들은 그러한 친밀한 관계 속에서 보다 자연스럽게 발화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이러한 글을 통해 그들이 술자리에서 편하게 나누는 대화를 엿듣거나 밤새 논쟁하던 그 시절을 추체험할 수 있다. 문혁을 막 벗어난 후, 혁명의 열정을 그대로 가지고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려는 의욕과 에너지가 분출되던 시기가 80년대였다. 90년대는 그러한 열정의 질적 변화를 특징으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80년대가 축적한 지식과 경험이 성숙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국의 80년대가 우리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킬지언정 지금의 한국적인 상황에 딱 들어맞는 뭔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기 위한 경로의 하나로 80년대식 뜨거운 피를 구성하는 기본인자가 무엇인지를 확인해 둘 필요는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80년대"는 1978년의 개혁개방에서 1989년 톈안먼 사건까지의 역사적 시간을 지칭한다. 그러나 대륙에서 출간된 원저에서는 중국 정부에 의해 금칙어가 된 "톈안먼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 없어 대부분 "89년" 혹은 "80년대 말" 등의 에두른 말로 마감하곤 했다. 그 외에도 주로 공산당이나 마오쩌둥을 직접 거론하여 비판한 내용은 대륙판에서 삭제되었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미묘한 단어들은 다른 용어로 대체되어 있었다.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홍콩판(홍콩 옥스포드 출판사, 2006)을 참고하여 대륙판에서 삭제된 본문내용을 최대한 되살렸다. 재미있는 것은 삭제에 대한 감각이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는 점인데, 이런 비판도 가능할까 싶은 문장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가 하면 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 단어나 문장은 경우에 따라서는 서너 페이지씩 통째로 잘려나가곤 했다. 이러한 대륙판 원문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삭제된 부분을 표시하는 방식을 강구하였으나 편집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해 아쉽다. 또한 삭제된 분량이 너무 많아 대륙판에서는 출간을 포기한 "류펀더우" 장은 저작권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어 번역본에 실리지 못했다. 적절한 시기에 출판사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장의 번역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이 책의 번역에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말투와 목소리를 표정 없는 글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개념과 논리의 좌표만 잘 잡으면 일관된 논지로 흘러가는 이론 저작과는 달리 곳곳에서 동문서답, 옆길로 새기, 토속어와 그 시기의 유행어, 속어, 관용어 등이 튀어 나와 번번이 애를 먹었다. 능력이 닿는 한 원문이 전하는 분위기와 그들의 개성이 한국어로 잘 표현될 수 있도록 고심했다. 번역어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없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를 감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말로 풀기도 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쓰는가, 어떤 맥락에 쓰는가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는 게 대화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어와 한국어의 무게 차이도 고려했는데, 잘못 가늠한 무게에 대해서는 많은 조언을 부탁드린다.) 각주는 최소화했으며 앞뒤 문장의 조응에 의해 맥락이 드러날 수 있도록 처리했다. 여러 장벽에 막혀 번역을 끌었지만 그것의 결과로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실제 '현장분위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바랄 나위 없을 것 같다. 그래야 예정된 일정이 한참 지나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준 주승일 차장과 그린비 편집부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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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