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10월 17일에 서거한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파금의 3주기를 맞아 몇 가지 행사가 진행된다.
먼저 10월 15일에는 그의 대표작 <가(家)>에 대한 대형 토론회가 열렸다. 작품 탄생 75주년을 함께 기념하는 자리이다. 이와 함께 자오즈강(赵志刚) 주연으로 상하이 월극단(上海越剧团)에서 월극(越剧)《가》를 재연하였다.
작품 토론회는 따로 부르지 않아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파금 전공자이자 월극 <가>의 문학고문이기도 한 지도교수 덕분에 공짜표도 있고 해서 저녁에 시간을 내서 월극을 보러 가게 되었다. 상해에서는 연극을 한편도 못 봤으니 시험삼아 봐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월극은 "월(越)" 지방, 즉 절강 지역의 전통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극에 비해 움직임이 적고 여성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당연히 절강 쪽 방언으로 대사와 노래를 했기 때문에 자막에 의지해 내용을 파악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리얼리즘을 표방한 <가>는 아주 재미가 없다. 지루해서 몇 번을 잡았다가 끝까지 읽지 못한 작품이다. 사실 한국의 중문과는 작품 읽는 걸 그다지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사실 다양한 작품을 읽힐 만한 환경도 되어 있지 않다.. ㅡㅡ;;) 학교 다니면서도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었다. 문학사에 나오는 내용만 잘 외우고 있으면 되니까.(못 읽은 게 별로 부끄럽지도 않다. 다만 중국 애들하고 이야기할 때 그렇다고 고백하기는 좀 거시기하다만..) 따라서 자막조차 대체로 이해를 못했다면 절강방언으로 하는 이 연극의 내용을 전혀 모를 뻔 했다.
재미 없을 것이란 선입견과는 달리 그런대로 볼 만 했다. 소설과는 달리 많은 생략을 통해 가장 기본적인 줄거리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노래와 분위기로 대체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장면전환도 느리고 동작도 느린데도 빠르게 진행된다고 느꼈던 것도 아마 "생략" 때문인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생략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물론. 주인공을 맡은 자오즈강은 "월극의 왕자"(越剧王子)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호응을 받는 인물이다만, 월극의 묘미를 모르는 나로선 그가 얼마나 좋은 연기와 노래를 펼치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내 개인적인 의견은 여성 동무들의 노래가 훌륭했고 남성 동무들은 좀 그랬다. 특히 악역인 천이타이(陈姨太) 역을 맡은 중년 배우의 노래가 잘 모르는 내 귀에는 가장 훌륭하게 들렸다.(누군지 찾아보려고 했는데 도통 검색이 안 된다.. 만약 2004년 초연 때와 같은 배우라면 후페이디(胡佩娣)였을 것이다. 전임 서안 월극단 단장이었고, 현재 상해 월극원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중간중간 끊임없이 박수를 치는데, 남들따라 박수 치는 것은 곧바로 포기했다. 노래나 연기가 훌륭할 때 박수가 나오는게 아니라 내용이나 대사가 훌륭하거나 자기 마음에 들면 박수를 날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박수는 "정의"의 편이다!!!) 악역 천이타이의 노래가 끝나고 내가 박수를 치려고 하는데, 바로 상대방의 대사가 이어지기도 했고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월극을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내가 누구 노래가 좋니 마니 하는 건 좀 그런가?)
문혁 이후 혁명 가극을 많이 보지 못했고 그 역사적인 관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10여년 전에 항주에서 봤던 전통 월극과 비교해 볼 때 요즘 새로 나오고 있는 소위 "신편 현대월극(新编现代越剧)"은 혁명 가극 냄새도 좀 풍기는 것 같다. 나로선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로 보이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노인네들만 가득찰 줄 알았는데(물론 대부분은 나이 많으신 분들이다.) 의외로 젊은 층도 많았고, 극이 시작하기 직전에 중학생들도 한 무더기 들어왔다. 혹시 동원된 애들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끝나고 환호를 지르며 "~선생님(老师)"라고 부르는 걸 보니 희극학교 학생들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인터넷 뒤져보니까 의외로 젊은 월극 마니아들이 꽤 있다.
남녀 주연배우. 자오즈강(赵志刚)과 산양핑(单仰萍). 이 외에 쑨즈쥔(孙智君), 쉬제(许杰) 등 출연.
극의 완성도에 비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던 건 너무나도 후진 음향 시스템이었다.
의자가 불편해도, 할배들이 떠들고 큰 소리로 기침해도, 공기가 나빠도 참겠는데(담배냄새가 간간히 났던 것 같은데, 설마 정말로 누군가 담배를 피웠던 건 아니겠지? 우리나라 예전 극장에서처럼??), 그 스피커는 정말 도저히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저음에서는 그런대로 들을 만했지만, 극의 절정부나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음악과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 찢어지는 소리에 귀를 막아야 했다. AM 라디오를 듣는 것 같은 잡음과 기계 돌아가는 소리도 그대로 들렸다. 예를 들어 눈을 뿌릴 때 하늘에서 고요하게 눈이 내리는 게 아니라 윙윙 소리를 내면서 눈이 날린다. 양푸대극원(杨浦大剧院)의 후진 시설을 탓할 수 밖에 없겠다.
깜빡하고 사진기를 챙기지 않아 직접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공연 중간에 함부로 후레쉬를 터뜨리는 중국 아해들의 매너 없음을 마음껏 욕해줬다. 극도 극이지만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의 행동이나 표정 같은 것도 사진으로 담아뒀으면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말이다..
맛뵈기로 동영상 파일을 보실 분들은 아래 사이트로....
http://so.ku6.com/v/q%E8%B6%8A%E5%89%A7%E5%AE%B6
越剧《家》0115:21 |
越剧《家》0315:21 |
상하이 월극원(上海越剧院) 홈페이지에 가면 월별 일정, 공연 장소와 시간 등이 나와 있다. 배우들에 대한 간략한 정보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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