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閱, 읽기 2012. 11. 25. 12:46

연세대 대학원신문 198호에 실린 글이다. 제목은 그쪽에서 알아서 "중국의 현실을 숯으로 지핀 뜨거운 생명력"으로 뽑아줬다. 원래 부탁받은 내용이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였기에 노벨상 관련 논란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웹으로 보면 폰트가 뒤섞여 있어 보기 힘들다. 참고삼아 아래 옮겨 놓는다.



모옌(莫言) : 작가와 작품세계에 대한 간단한 소개

노벨문학상을 점치는 경매 사이트에서 막판까지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되었던 동아시아의 두 후보는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감수성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비해 모옌은 생긴 것부터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해 보인다. 그의 이름을 바깥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영화 <붉은 수수밭>의 장면인양 거나하게 한상 차려 놓고 웃통 벗어젖힌 채 같이 고량주나 비우면 어울릴 것 같은 생김새다. 그런 자리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안주로 오를 법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 그의 소설이 된다. 좋게 말하면 정제된 서면어가 담지 못하는 풍부함이 살아 있지만, 다른 한편 그 시공간을 공유하지 못한 외부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감성(번역의 문제와 직결된다), 불알친구들 술자리에 낀 새색시의 불편함, 했던 말 하고 또 하는 너스레, 과장된 허풍, 투박함 등이 혼재되어 있다. 대부분 옛날 어디에서 누가 말이지, 라며 시작되는데, 그 시간적 배경은 주로 문화대혁명을 전후한 중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이고 공간적 배경은 자신의 고향을 문학적으로 확장한 가오미(高密) 현 둥베이(東北) 향이다.

 ‘높이’ 자란 붉은 수수만 ‘빽빽한’ 고향

모옌은 1955년 중국 산둥성 가오미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관모예(管謨業)이다. 가족이 아주 많았으며, “굶주림과 고독은 내 창작의 원천”이라고 할 만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물론 이 가난은 당시 중국이 처한 정치적・경제적 고난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50년대 후반의 연이은 3년 재해와 대약진 운동, 인민공사의 시행착오로 인해 빈곤은 모든 인민이 공유한 경험이 되었으며, 문화대혁명의 십년은 그 빈곤을 여러 방면에서 영속화시켰다. 굶주림으로 대표되는 결핍의 경험은 모옌 작품의 밑거름이 되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굶주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고작 50여 년 전이었던 유아기를 태고의 원시적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모든 근육이 입과 위장에 집중되어 있고 생활보다는 생존이 문제가 되는 공간이다. 시커먼 석탄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원시 삼림과 직접 만나기도 하고, 소든 사람이든 불알을 까고 생육을 계획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중편 「소(牛)」, 장편 『개구리(蛙)』). 굶주림이 해결되고 먹을 게 넘쳐나는 시기가 되어서도 왕성한 식욕은 끝을 몰라 어린 아이를 잡아먹고 다른 한편 여전히 굶주린 사람들은 살기 위해 아이를 낳아 도시에 상품으로 판매한다(<술의 나라(酒國)>).

고향에서의 생활과 가난한 어린 시절은 「백구 그네(白狗秋千架)」(1984), 「투명한 홍당무(透明的红萝卜)」(1985)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년기의 개인적인 경험이 깊게 투영된 이들 초기작에는 “기아와 음식물”, “아동고난사”, “꿈과 환상”, “동물과 식물” 등 이후의 창작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원초적인 형태로 선보이고 있으며, ‘가오미’가 단순히 고향이란 의미를 넘어 창작의 밑그림과 같은 문학적 공간으로 설정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최근작 <개구리>에 이르기까지 모옌의 거의 모든 소설은 ‘가오미’에서 진행되거나 그것을 기초로 한 가상공간에서 펼쳐진다. 그것은 윌리엄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 혹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콘도에 비견되는 장소로 지적되어 왔다. “제 소설의 가오미 둥베이향은 이미 문학적인 개념입니다. 실제 지명을 기초로 하였지만 허구의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죠. 그것은 윌리엄 포크너가 창조해낸 허구의 고향과 유사한 어떤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술적 리얼리즘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던 12살 때 모옌은 소학교 5학년을 끝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에서 소를 치거나 임시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1976년 입대한다. 농민, 노동자, 군인으로 이어지는 성장기는 전형적인 작가의 탄생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정상적인 교육이 정지되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제한되어 있던 그 시기의 중국은 다른 형태의 굶주림인 고독을 모옌에게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프랑코 모레티가 빼기를 했는데 더하기를 한 결과라고 소개한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300년 동안 출판이 통제되고 소설 수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던 다양한 문학적 전통, 현실에 대한 신화적 상상력과 함께 정치적 식민지였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모더니티의 산물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공화국 건국 이후 1980년까지 30여 년간의 중국은 어찌 보면 '마술적 시각으로 변형된 리얼리즘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경이로운' 중남미의 경험을 압축한 측면이 있다. 모든 소설이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특정한 형식과 내용의 글만 허용되었다. 문예계에서 인민을 위한 모범이 되는 극이나 글을 대표하는 이른바 "양판"이란 것은 딱딱하게 굳어있는, 그래서 생명이 없는 틀이었다. 문혁 10년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학교가 문을 닫고 거의 모든 책이 금서가 되어 불살라졌다. 모옌, 위화, 옌롄커 등 당대 중국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작가가 이 시기의 굶주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쓸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게걸스러움을 회고한다. 학교가 열리고 기존의 서적들이 재출간되고 새로운 사상, 새로운 이론과 작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모옌 또한 이 시기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서사기법을 시도한 선봉문학의 대표로 떠오른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서구문화의 맹목적 추구로 끝나지는 않았다. "중국의 마르케스"라는 호칭에 걸맞게 특히 마술적 리얼리즘의 영향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들이 자신의 고유한 현실과 신화 속에서 새로운 문학을 창조한 것을 거울삼아, 그는 중국의 민간전통에서 세계문학과 대결할 수 있는 생명력을 찾아내려 했다. “예외적인 것, 기이한 것, 경이로운 것, 한마디로 말해 모험이 여전히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비동시대성의 세계는 라틴 아메리카만이 아니지 않은가. <수호전>의 영웅호걸의 후예가 살고 있는 곳, <요재지이(聊齋志異)>가 못다 수집한 풍부한 지괴 이야기, 소설이라는 제국에 병합되지 않은 민간의 구술전통이 그의 고향 가오미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서구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 선봉(아방가르드)과 심근(뿌리찾기)을 결합하려는 노력은 <풍유비둔(豊乳肥臀)>(1995)을 거쳐 <탄샹싱(檀香刑; 박달나무 형벌)>(2000)에서 만개한다. 이 작품은 ‘의화단 사건’이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배경으로 하여, 서양 연합군의 침입으로 서서히 멸망해 가는 청나라와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제압당하고 마는 민중들의 혁명, 그리고 그에 이은 잔인한 형벌 등 중국의 민간 사회상이 밀도 있게 묘사되고 있다. 소설이 발표되자 많은 비평가들은 모옌과 중국당대문학의 세계화를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탄샹싱>은 전통적인 서사방식, 민간의 가창문학, 의식의 흐름, 희극, 마술적 리얼리즘, 민간의 역사, 중서문화의 충돌이 어우러져 있는 21세기 중국의 중요한 소설로서, 전지구적 배경 하에서 중국의 뿌리를 지켜나가고, 중국의 전통을 구성하고, 깊은 문화적 전통을 확립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는 관점에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숯과 다이아몬드

노벨상 수상 후 모옌은 <인생은 고달파(生死疲勞)>(2006)를 독자들에게 추천한 바 있다. 아마도 <인생은 고달파>를 거치며 비로소 마르케스의 영향에서 벗어났다는 확신을 스스로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고전 장편소설의 서사방식인 장회체(章回體)와 불교의 윤회적 세계관을 차용한 이 작품은 모옌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시도로 평가된다. 지주가 나귀, 소, 돼지, 개와 같은 동물로 환생하여 동물의 시각에서 보여주는 세상은 독특한 사고방식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전개를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장회체의 차용은 폭포처럼 쏟아내던 그의 언어에 새로운 리듬을 부여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문학적인 성취의 측면에서 유보적일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추천하는 작품은 <개구리>(2009)이다. 작가 스스로 <백 년의 고독> 이전 상태로 회귀하여 썼다고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모옌의 초창기 중단편을 연상시키는 간결한 문체가 돋보인다. 또한 현재진행형인 중국의 계획생육을 중심으로 환상에 기대지 않은 허구와 상징을 활용함으로써, 생명을 주관하는 신화 속 여와와 한갓 도구에 불과했던 여인의 비애, 그러한 과거에 대한 참회와 새로운 현실의 욕망이 혼재된 모순된 인간상이 고모라는 인물로 잘 형상화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현실문제에 보다 접근하고, 자기표절을 피하고자 애썼다는 모옌은 자신을 넘어 이미 다음 걸음을 딛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모옌은 “말하지 말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1981년 이후 30여 년간 엄청난 분량의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스스로도 말한 바 있듯이 그는 문장 하나까지 지나치게 공을 들이기보다는 격정적으로 창작욕을 분출하는 스타일의 작가이다. 모옌은 자신이 거쳐 온 삶과 중국의 현실을 정련하여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작가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석탄이면 어떤가? 아니 석탄이 더 필요하지 않은가? 영원히 빛나거나 단단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 몸을 달구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노벨상 수상으로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모옌 자신은 담담히 말한다. 바라건대 어서 빨리 "알 낳는 암탉"은 잊어버리고 그가 "낳은 달걀"을 맛보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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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